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병원이 급격한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다. 기존의 대면진료를 중심으로 구성됐던 의료시장의 패러다임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재구성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판뉴딜의 대표 과제의 하나인 ‘스마트 의료 인프라 구축’을 통한 스마트병원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스마트병원은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환자의 안전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료서비스를 개선한 미래형 병원으로, 현재 5개 병원이 정부의 지원하에 선도모델을 개발하고 검증·확산하고 있다.
이 중 스마트폰 기반의 출입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5G 방역 로봇을 도입해 코로나19 환자 발생시 10분안에 이동 경로와 접촉자까지 파악, 선제적으로 환자 관리를 하고 있는 용인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가 직접 경험해봤다.
6일 오전 용인세브란스병원 1층 로비. 문진표 작성, 발열 체크 등을 위해 환자와 가족, 직원들로 붐벼여야 할 출입구 일대가 한산했다. 지난해 3월 개원 이후부터 병원 내 출입구에 설치된 ‘전자 문진 키오스크’ 덕분이다. 전자 문진 키오스크는 말 그대로 수기가 아닌 전자 방식으로 키오스크에서 문진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검사 대기시간 단축, 수기작성 오류 축소와 함께 종이를 주고받는 데 따른 교차감염을 차단할 수 있어 코로나19 상황에서 특히 각광을 받고 있다.
병원 직원의 도움을 받아 키오스크에 간단한 인적사항과 건강상태를 입력하니 문진표 작성이 순식간에 끝나고 QR 출입증이 발급됐다.
QR 출입증을 받아 옆으로 이동하자 이번엔 지하철 승강장 출입 시스템과 유사하게 구성된 스피드게이트가 또 한번 출입을 가로막는다. 발 모양이 그려진 위치에 서서 안면인식 열화상 카메라에 얼굴을 맞추니 36.5도. 정상체온이 확인되고 앞서 발급받은 QR출입증을 게이트에 인식시키자 그제서야 출입문이 열렸다. 37.5도 이상의 고열이 있으면 입장은 자동 통제 된다.
1, 2차 관문은 통과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관문인 ‘용인세브란스 병원’ 방문앱을 다운받아 병원을 방문한 목적에 맞게 출입증을 생성해야만 원내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생성된 출입증에는 이름과 체온, 태그 번호가 나란히 표시되는데, 이는 원내 위치 추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다.
병원은 지난 4월 효율적인 감염 관리를 위해 RTLS(Real Time Location System) 감염 추적 솔루션을 개발했다. RTLS는 사물 등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추적 가능한 시스템으로 입원환자, 환자 보호자, 의료진, 병원직원 위치 데이터를 수집한다. 신호를 받을 수 있는 비콘 태그는 교직원 목걸이, 입원환자 팔찌, 보호자 목걸이에 들어가 있어 감염병 유행이나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 시 특정인이 몇 층 어디에 있는지 상세하게 파악 할 수 있다.
박진영 디지털의료산업센터 소장은 “병원 내 감염자 발생시 기존에는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과 감염자 기억에 의존해 3일치 카드사용 내역과 CCTV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며 “RTLS 사용 이후에는 12시간 이상 걸렸던 작업이 4시간으로 단축돼 감염병 확산을 최소화 할 수 있고, 입원환자의 안전 관리도 한층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병원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모든 이들의 위치 추적이 가능해 환자 관리 뿐 아니라 병원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도 피할 수 있다.
박 소장은 “예전에는 감염자가 발생하면 병동을 폐쇄했지만, 지금은 추적조사가 가능해 확진자와 반경 2m 내 접촉한 사람들 중 접촉한 장소와 시간 등을 계산해 폐쇄 구역을 설정할 수 있다”며 “병원은 문을 안 닫아도 되고, 접촉자와 오래 접촉한 사람은 우선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추가적인 N차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내 확진자 발생시 이동 경로와 접촉자 추적을 보다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무선 네트워크 인프라가 잘 갖춰져서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은 보건복지부가 추진중인 ‘2020년도 스마트병원 선도모델 개발 지원사업’에 선정된 후 무선 네트워크 인프라를 증설했다. 국내 병원 최초로 5G 기반 인빌딩 통신망을 구축했으며 여기에 Wi-Fi6 무선네트워크망과 BLE(Bluetooth Low Energy) IoT 인프라도 갖췄다.
이를 기반으로 용인세브란스병원은 SK텔레콤과 협업해 ‘5G 방역로봇 솔루션’을 구축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더욱 중시되는 병원 내 감염 차단에 로봇을 활용하는 것이다.
스스로 방역하는 이 로봇의 이름은 ‘비누(BINU)’로 ‘방역에서도 새로움(BE NEW)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로봇이 이동중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면 마스크 착용에 대한 안내 음성과 함께 중앙 관제실로 실시간 알람을 제공한다. 최대 10명의 얼굴까지 동시에 인식하고 0.3초 이내로 결과를 분석한다. 정확한 인식결과로 ‘턱스크’, ‘입스크’ 처럼 마스크를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판별해 낸다.
병원 안에서 5인 이상이 한데 모여 있으면 소리를 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청하기도 하고, 아이들도 수시로 손 소독을 할 수 있도록 분사 위치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설계했다. 야간에는 자외선을 이용해 키오스크 주변 내 소독도 실시한다. 소독제를 찾아 나설 필요 없이 방역로봇 앞에서 언제든 손만 내밀면 쉽게 소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박 소장은 “5G 방역로봇은 방문객이 많은 주요시설에서 별도 인원 없이 실내 코로나19 방역관리가 가능해져 업무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며 “방역로봇의 활동 내역은 영상분석 기반의 지능형 방문자 관리 시스템과 함께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5G 방역로봇이 자율주행으로 건물 내부를 이동하며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안내(48회)를 한 정보는 통합반응상황실(IRS: Integration & Response Space)로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통합반응상황실은 기존에 의료진이 각자의 공간에서 관리했던 환자 데이터와 병원 자산을 디지털로 한데 모아 관리하는 일종의 중앙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여러 대의 모니터로 둘러싸인 IRS에서는 실시간 환자 생체신호, 응급실 현황, 중환자실 CCTV, 진단 검사 현황, 환자 및 병원 자산 위치 파악(RTLS) 등 병원의 전반적인 상황을 한 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봄직한 컨트롤타워를 용인세브란스병원이 갖춘 것이다.
이 때문에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는 시간마다 환자 상태를 체크하러 병실을 찾아다니는 의료진도, 환자가 병실을 비웠을 때 찾는 안내 방송도 들리지 않는다.
박 소장은 “IRS 덕분에 입원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조기 발견할 수 있게 됐으며, 갑작스러운 응급상황 발생에도 신속한 대처가 가능해지면서 위험 상황에 놓인 환자를 놓치는 일이 없어졌다”며 “기다림의 대명사로 일컫어졌던 병원도 이제는 의료계의 패러다임 변화 속도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의 눈은 늘 환자를 향해 있다. 예기치 않은 응급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제는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이 만나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게 됐다. 의료진의 반복적인 업무나 진료 외의 업무들은 디지털이, 의료진은 환자에게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한국판 뉴딜의 대표과제 중 하나인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의료 인프라 구축이 이뤄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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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기자 다른기사보기